2014 3월

Design in Cinema – 6. <비상근무>(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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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잘못된 상징에 분노하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1990년대 뉴욕의 밤거리. 번쩍이는 경광등,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달리는 구급차. 그 구급차에는 응급요원 5년차인 프랭크 피어스(니콜라스 케이지)가 타고 있다.

 


▲ (위) 뉴욕의 밤을 가로지르며 질주하는 앰뷸런스
▲ (아래) 자신이 구하지 못한 생명에 대해 자책감을 느끼는 프랭크

 

그는 밤 12시에서 아침 8시까지 뉴욕 맨해튼을 순찰하며 사고로 다치거나 발작을 일으킨 환자를 응급처치하고 수송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현장에 출동하여 생명을 구했을 때의 성취감은 최고의 마약이라고까지 말했던 프랭크. 하지만 그는 자신이 구하지 못한 길거리의 여자 로즈에 대한 자책감에 시달리는 중이다. 로즈의 생명을 구조해내지 못한 뒤로 슬럼프에 빠졌는지, 그는 출동을 해도 계속해서 생명을 구하지 못한다. 급기야 프랭크는 “나는 한 번 육신을 빠져나온 영혼은 다시는 자신의 몸으로 들어가기 싫어한다고 믿는다”라는 말까지 되뇐다. 그러던 중 심장마비를 일으킨 노인을 기사회생시켜 병원으로 이송하게 되고, 이 와중에 만난 노인의 딸 메리 버트에게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응급실 단골인 골치 아픈 환자, 마약 중독자와 마약 상인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프랭크의 피로에 젖은 3일간이 영화 <비상근무 Bringing Out the Dead>(1999)의 주요 줄거리다.

 


▲ (위) 앰뷸런스는 눈에 잘 띄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 (아래) 앰뷸런스의 전면에 표기된 글씨는 좌우가 뒤집혀 있다.

 

영화 속 화면을 채우는 대부분의 장면들은 무채색의 어두운 밤거리와 밝지만 아수라장인 병원 응급실이다. 그중에서도 유독 돋보이는 건 바로 앰뷸런스의 색깔이다. 백색 몸체에 청색 심벌과 오렌지색 라인으로 치장된 앰뷸런스에서만 생동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구급차 전면에 쓰인 ‘AMBULANCE’라는 단어의 좌우가 뒤집혀 있다는 점이다. 마치 거울에 비친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잘못된 게 아니라 실제 상황의 긴박함을 반영한 디자인이다. 구급차는 대체로 급히 이송을 해야 한다. 그러나 교통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가 있다. 부득이 양보를 요청하며 달려가게 된다. 이때 구급차 앞에 있는 차의 운전자는 룸미러나 리어미러로 구급차를 보게 된다. 앞차의 운전자가 좀 더 쉽고 빠르게 구급차임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반전시킨 디자인이다.

 


▲ 어느 것이 즉각적으로 읽히고 이해가 되는가?

 

그리고 앰뷸런스에 사용된 글씨체가 그 유명한 헬베티카다. 1957년 처음 세상에 나온 헬베티카는 1970년 이후에야 뉴욕에 상륙하게 되었다. 이후 뉴욕 지하철 사인(sign) 시스템 디자인에 적용된 효과에 힘입어 공공기관의 지정 서체로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서체로서 공공•공익의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이다. 문제는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기업체들까지 헬베티카로 자신들의 로고타입을 디자인하며 공익적인 이미지를 기업 이미지로 포장하려는 데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역설적으로, 헬베티카는 기득권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다큐멘터리 영화인 <헬베티카>를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월남전을 후원한 기업들 모두가 헬베티카로 로고를 만들었다. 즉 헬베티카를 사용한다는 것은 그 기업들을 용인하는 것이고 월남전을 정당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일개 서체이지만 때로는 그 서체가 대변하는 체제와 정체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 앰뷸런스 뒷문과 프랭크의 제복에 새겨진 심벌. ‘생명의 별’로 불린다.

 

메리는 구급차에 실린 아버지 곁에 함께 탑승하려 하지만, 프랭크는 그녀를 만류한다. 결국 프랭크는 구급차의 뒷문을 닫아버린다. 이때 구급차 뒷문 유리창에 새겨진 심벌을 보자. 이 심벌은 ‘생명의 별(Star of Life)’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1977년 미국 국립고속도로교통안전국에서 제정한 것이다. 6꼭지의 별 모양 위에 있는 지팡이를 뱀 한 마리가 휘감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심벌이 구급차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 왼쪽이 아스클레피오스, 오른쪽이 헤르메스. 지팡이와 뱀이 다르다.

 

여기에서 지팡이와 뱀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것이다. 아스클레피오스는 기원전부터 유능한 의사의 대명사였다. 그는 신들의 왕 제우스의 번개를 맞아 죽은 글라우코스를 소생시키고자 치료를 하게 되는데, 그때 뱀 한 마리가 방 안으로 들어온다. 놀란 아스클레피오스는 자신의 지팡이로 뱀을 죽인다. 잠시 후 다른 뱀 한 마리가 약초를 입에 물고 들어와 죽은 뱀 입 위에 올려 놓자 죽은 뱀이 다시 살아났다. 이를 본 아스클레피오스도 뱀을 따라서 그 약초를 글라우코스의 입에 갖다 대어 살려냈다. 이후 그는 존경의 의미로 지팡이를 휘감고 있는 뱀 한 마리를 자신의 상징으로 삼았다고 한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이 심벌의 별은 각 꼭짓점마다 응급의료 관계자의 의무를 담고 있다. 맨 위의 점부터 시계방향으로 ①조기발견, ②조기보고, ③조기대응, ④현장처치, ⑤운송 중 처치, ⑥치료기관으로의 최종 후송 등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의학계를 대표하는 대한의사협회의 휘장을 보면 뱀이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이고, 지팡이에는 날개까지 달려 있다. 이것은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가 아니라 헤르메스의 지팡이다. 헤르메스는 상인, 도적, 연금술사의 신이자 죽은 자를 하데스(죽은 자들의 나라)로 이끄는 안내자의 상징이다. 즉, 의학에는 어울리지 않는 상징인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한국의 대표 의학단체가 헤르메스의 지팡이를 사용하게 되었을까?

 


▲ 왼쪽부터 차레로 미군의무부대 휘장, 대한의사협회 휘장, WHO(세계보건기구) 휘장

 

한국이 헤르메스 지팡이를 의학 휘장에 사용하게 된 경위는 2007년 6월 <의사학(醫史學)> 16권 제1호에 실린 ‘대한의사협회 휘장의 소사: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와 헤르메스의 지팡이’(신영전 글)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간추리자면 예전부터 북미로 많은 의학서적을 수출했던 런던 처칠 출판사의 문장이 헤르메스의 지팡이였고, 미국의 출판사들은 이 문장이 의학의 상징이라고 오인해 의학 관련 서적에 사용했다는 것. 이로 인해 북미의 의사들도 덩달아 이런 잘못된 인식을 공유했다고 한다. 이후 미군 의무부대가 1902년에 헤르메스 지팡이를 휘장으로 채택했고, 제2차 세계대전 말 미군정이 한국에 주둔하게 되면서 그 영향으로 대한의사협회 휘장에도 헤르메스의 지팡이가 적용되었다는 것이다.

최초의 휘장은 1947년에 공모에 의해 정해졌는데 당선자는 대표적 친일 미술인인 조병덕이었다고 한다. 그 뒤 몇 차례의 수정을 거쳤고, 오늘날의 형태는 1995년 6월 공모하여 1996년 4월에 최종 공표한 것이라고 한다. 너무도 아쉬운 것은 지팡이의 상징성에 대한 깊은 고찰 없이 초기의 잘못된 휘장을 토대로 단순 발전시킨 안이한 접근이다. 조금만 더 역사적 고찰과 상징에 대해 연구했더라면 이런 오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디자인의 형태도 불만족스럽다. 1996년이면 88올림픽으로부터 10년 가까이 흐른 때이다. 국내의 디자인업계도 이미 세계적 수준에 도달한 시점이다. 도저히 1996년에 디자인되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형태다.

 


▲ 대한의사협회 휘장 변천사

 

영화 속 뉴욕의 밤은 반짝이는 대낮이 마치 무대의 세트라도 되는 것처럼 피 흘리고,다치고, 망가지고, 부서진다. 상징의 대상에 대한 깊은 애정과 보살핌 없는 디자인 역시 뉴욕의 낮과 밤이나 매한가지 아닐까? 매끄러운 겉모양과 달리 그 뒤에서 의미는 비틀어지고 왜곡되는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그것이 개선되지 않고 반복되며 원래의 의미를 말살할 때다. 디자이너는 어쩌면 잘못된 의미와 상징을 바로잡는 응급요원이 되어야 한다!

 

출처: 타이포그래피 서울 – TypographySeoul, http://www.typographyseoul.com

Design in Cinema – 5. <돈 세이 워드>(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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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뉴욕의 지하철 노선도를 질투하다

 

1991년 뉴욕의 한 은행이 강도들에게 습격을 당한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현금이 아닌 붉은 다이아몬드 한 알. 강도들은 목적을 달성한다. 하지만 일당 중 한 명이 다이아몬드를 몰래 빼돌리면서 두목은 배신에 치를 떤다.

 


▲ 上: 영화 <돈 세이 워드(Don’t Say a Word)> 中  은행털이 일당은 현금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붉은 다이아몬드에만 집착한다.
▲ 下: 영화 <돈 세이 워드(Don’t Say a Word)> 中 네이선 박사는 10여 년간 정신병원을 드나든 엘리자벳을 마주하고, 그녀가 정상임을 알아챈다.

 

이어지는 장면은 10년 후인 2001년 뉴욕 어퍼웨스트의 한 정신과 의사 상담실. 마지막 상담을 끝내고 가족과 추수감사절을 보낼 생각으로 즐겁게 퇴근하는 네이선 콘라드 박사. 그런 그에게 시립정신병원 상담의인 친구 루이스로부터 급한 전화가 걸려온다. 18세의 중증 신경정신증 소녀 엘리자벳과의 면담 요청이다. 당장 증세가 호전되지 않으면 평생을 병원에 수용된 채로 지내야 하니 이 소녀를 구제해달라는 것.

네이선은 친구의 부탁을 거절 못 하고 시립정신병원으로 향한다. 공허한 눈빛의 엘리자벳은 실어증이라도 걸린 듯 좀처럼 입을 열려 하지 않는다. 노련하고 예리한 정신과 의사인 네이선은 이 소녀가 긴장증 환자인 척 연기를 하고 있음을 한눈에 간파해낸다. 다음 면담을 약속하고 일단 집으로 돌아온 네이선. 그런데 이튿날 아침, 자신의 어린 딸 제시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납치범의 전화를 받는다. 납치범은 딸을 돌아오게 하고 싶다면 엘리자벳으로부터 어떤 번호를 알아내라는 요구 사항을 전달하고…. 네이선은 딸의 소지품을 챙겨 정신병원으로 되돌아가 굳게 닫힌 엘리자벳의 마음을 열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다. 결국 그는 엘리자벳과 함께 정신병원을 빠져나와 그녀의 트라우마가 시작된 차이나타운의 커낼 스트리트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 上 영화 <돈 세이 워드(Don’t Say a Word)> 中 네이선 박사는 엘리자벳의 트라우마가 시작된 지하철역으로 가기 위해 병원을 빠져나온다.
▲ 中 영화 <돈 세이 워드(Don’t Say a Word)> 中 영화 속 차이나타운의 커낼 스트리트 역 입구. 노선도 표시가 낯익다.
▲ 下 영화 <돈 세이 워드(Don’t Say a Word)> 中 뉴욕 지하철 사인 시스템의 기본 서체인 헬베티카

 

이 지하철역에는 영화 속 심각한 이야기 전개와는 별개로, 유심히 눈여겨봐야 할 디자인적 미스터리가 숨겨져 있다.
오늘날 26개 노선과 468개 역으로 이루어진 뉴욕의 지하철은 1904년 처음 개통되었다. 그로부터 60여 년이 흐른 1968년, 뉴욕 지하철의 사인 시스템을 정비하는 디자인 작업이 진행되었다. 마시모 비넬리(Massimo Vignelli)와 그의 파트너 밥 누다(Bob Noorda)가 세운 디자인회사 ‘유니마크 인터내셔널’이 작업을 맡았다.

마시모는 초기 모더니즘 디자인의 스타들 중 한 사람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헬베티카>에서 인터뷰이로 등장할 만큼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다. 그가 디자인한 아메리칸 에어라인(AA)의 심볼은 지금도 수정 없이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마시모 비넬리가 디자인한 뉴욕 지하철의 사인 시스템은 현재 기본 서체로 헬베티카 미디엄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한 명 있으니, 바로 디자인 저술가인 폴 쇼(Paul Shaw)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마시모와 파트너 밥 누다는 헬베티카 서체가 어떻게 오늘날 뉴욕 지하철 사인 시스템의 기본 서체로 적용되었는지 그 경위를 정확히 기억 못 한다고 한다.

또 폴 쇼는 유니마크에서 디자인한 뉴욕 지하철 사인 시스템의 기본 서체는 애초에 헬베티카가 아니라 스탠다드(악시덴츠 그로테스크가 영국과 미국에서 불리던 이름)였다고 주장한다(실상 1957년에 세상에 나온 헬베티카는 1950년에 나온 악시덴츠 그로테스크에서 비롯된 서체다). 원래 마시모는 새로 등장한 헬베티카의 타이트한 자간 조절에 매료되었고, 당연히 자신이 디자인하는 뉴욕 지하철의 사인 시스템에도 적용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당시(1968년) 미국에는 헬베티카가 수입조차 안 된 상황이었고, 사인을 제작할 업자들은 추가비용이 들어가는 신서체 구입을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업체들이 이미 보유한 서체들 중 헬베티카와 가장 유사한 스탠다드 서체로 사인물을 제작하게 된 것이라는 게 폴 쇼의 추론이다. 실례로 뉴욕에는 아직도 스탠다드 서체가 적용된 사인물이 곳곳에 남아 있다고 한다.

 



▲ 上: 오래전 설치된 역에는 아직도 스탠다드 서체로 제작된 표식이 남아 있다.(좌측 스탠다드, 우측 헬베티카)
▲ 下: 스탠다드와 헬베티카를 겹쳐놓은 모습. 붉은색이 스탠다드, 푸른색이 헬베티카.

 

헬베티카가 점차 대중적 인기를 얻어감에 따라 사인 제작업체들도 자연스레 헬베티카를 보유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어떤 계기나 논의도 없이 슬그머니 스탠다드 대신 헬베티카로 사인물을 제작하는 분위기가 생겼고, 1989년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디지털화된 헬베티카 서체만을 적용시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디자인의 수도라고 불리는 뉴욕에서도 이런 ‘얼렁뚱땅’ 넘어가는 상황이 벌어졌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마시모의 사인 시스템 디자인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고, 심지어 MoMA(뉴욕현대미술관)에도 영구 소장되어 있다.

여기에 한국인 디자이너로서 안타까운 사실을 하나 보태고자 한다. 영화 속 지하철역 입구의 노선 표시가 낯익지 않은가? 정원 위에 숫자와 알파벳으로 호선 구분을 한 디자인은 서울 지하철의 그것과 유사하다. 서울의 1호선이 개통된 시기는 1974년이다. 1968년 적용된 뉴욕의 지하철 사인 시스템 디자인을 차용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의 표식이 초창기 빨간 원과 흰 숫자였던 것을 기억하면 더욱 그렇다.

 


▲ 엘리자벳이 노선도를 보며 아버지가 묻힌 무연고자 묘지를 가리키고 있다.

 

자, 지하철역의 미스터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다시 영화 속 네이선과 엘리자벳에게로 돌아가자. 커낼 스트리터 역 안에서 10년 전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하는 엘리자벳. 그녀의 아버지는 10년 전 은행강도단의 일원으로, 두목을 배신하고 다이아몬드를 숨긴 장본인. 출소한 일당에 의해 지하철역 안에서 폭행당하고 결국 지하철 선로 밑으로 밀쳐져 살해되었다. 다이아몬드는 어린 엘리자벳의 인형 미쉬카의 몸속에 숨겨져 있었고, 엘리자벳은 무연고자 묘지에 묻힐 아버지의 관 속에 그 인형을 집어넣었다. 아버지가 묻힌 곳을 물어보는 박사에게 엘리자벳은 지하철 구내에 설치된 대형 지하철 노선도 위의 한 지점을 가리킨다. 그곳은 하트아일랜드. 문제는 현재 뉴욕 지하철 노선도에는 이곳이 없다는 것이다. 하트아일랜드뿐 아니라 그 옆의 시티아일랜드도 없다. 2010년에 리뉴얼된 노선도에만 시티아일랜드가 표시되고 있다. 어찌된 일일까?

 


▲ 1933년에 제작된 런던의 지하철 노선도

 

뉴욕의 지하철 노선도에는 지하철의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마시모는 지하철 사인 시스템과 노선도를 함께 디자인했는데, 그의 노선도는 1972년도에 배포되었다가 1년 만에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는 현재의 모습과 유사한 형태로 바뀌었다. 이 사실에 주목해보자. 

마시모가 디자인한 노선도는 ‘도상적 지도’ 범주에 속한다. 이와 달리 지금의 노선도는 ‘지형학적 지도’ 범주에 속한다. 도상적 지도는 지리적 위치와 상관없이 정보 중심으로 디자인된 것으로 1933년 헨리 찰스 벡(Henry Charles Beck)이 디자인했던 영국 런던의 지하철 노선도와도 궤를 같이한다. 도쿄와 서울 역시 도상적 지도 범주의 지하철 노선도를 사용한다.

 


▲ 마시모가 디자인한 뉴욕의 지하철 노선도 / 현재의 뉴욕 지하철 노선도

 

그러나 절제된 디자인이 특색인 마시모의 노선도는 배포 이후 논란에 휩싸였다. 너무나 간략화된 지형 때문에 몇몇 역의 위치가 실제와 다르게 보이고, 바다의 색을 블루가 아닌 베이지로 표현해 혼란을 야기한다는 문제점이 지적된 것이다. 그 결과 마시모의 노선도는 1년 정도밖에 유지되지 못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은 <맨즈 보그> 2008년 5월호 부록으로 마시모가 다시 디자인한 노선도가 발행되었다는 것이다. 원형을 유지하면서도 바다 색을 미색에서 밝은 청색으로 바꾸는 등 좀 더 개선된 형태로 디자인되었다. 뉴욕시와 연계된 공식 프로젝트가 아니었기에 디자인적 해프닝에 그쳤지만, 이런 해프닝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마시모의 노선도가 현대적이고 아름답다는 방증일 것이다.

 


▲ 마시모가 다시 디자인해 <맨즈 보그> 부록으로 발행한 노선도 / 현재의 노선도 / 킥맵 아이폰용 노선도

 

그렇다면, 영화 속 노선도에는 표시된 섬이 실제 노선도에는 없는 까닭은 무엇일까? 시티아일랜드 옆의 하트아일랜드는 실제로 존재한다. 다만 노선도에서 누락되었을 뿐이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2010년 리뉴얼된 노선도에 시티아일랜드는 표시되었으면서, 그 옆의 하트아일랜드는 왜 누락되었나 하는 점이다. 교통편이 중심이 되는 지하철 노선도이다보니 불필요한 부분은 생략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추측을 해본다. 시티아일랜드까지는 교통편이 있고 하트아일랜드에는 없기 때문이다.
모더니즘 디자인 거장 마시모의 대표작인 뉴욕 지하철 사인 시스템. 그 명성은 마치 노장 디자이너의 신화처럼 여겨지지만, 기본 서체 문제와 지하철 노선도의 오류 같은 부분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마시모의 노선도가 이런 기본적 오류를 내포하지만 않았어도, 오늘날 우리는 훨씬 더 아름다운 뉴욕의 지하철 노선도를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뉴욕 노선도 사례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디자인적 교훈은 아름다움도 물론 중요하지만 기능적인 부분을 간과하면 결코 디자인적으로 용인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마시모의 DNA는 오늘날 스마트폰 시대로 이어지고 있다. 아이폰 앱 가운데 킥맵(Kick Map)이라는 뉴욕 지하철 노선도 앱이 있다. 이 앱의 노선도는 마시모의 디자인과 지형학적 요소를 적절히 결합시킨 형태를 가지고 있다.

지하철 노선도는 그 도시의 디자인적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는 척도다. 도쿄를 처음 방문했을 때 녹색의 순환선 야마노테선을 보면서 서울의 2호선을 떠올리고, 뉴욕의 지하철을 보고 서울의 1호선을 발견하며 느꼈던 당혹감은 잊을 수가 없다. 그에 반해 1933년 디자인된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런던의 노선도, 그 영향으로 디자인된 마시모의 노선도는 지금 봐도 정말이지 아름답다. 그런 노선도를 가진 도시가 부럽고 질투 날 뿐이다.

 

출처: 타이포그래피 서울 – TypographySeoul, http://www.typographyseoul.com

Design in Cinema – 4. <유브 갓 메일>(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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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디자이너는 오래된 책을 탐닉한다

 

뉴욕 맨해튼 어퍼웨스트의 이른 아침. 캐슬린 캘리(맥 라이언)의 애플 파워북 모니터에 AOL(American OnLine) 초기화면이 떠오르고, 추억도 아련한 모뎀의 접속 효과음이 흐른다. 또도도도또또. 츠~으~~치이~. 접속 아이디는 Shopgirl. 메일 상자를 클릭하자 ‘유브 갓 메일(You’ve got mail)~!’ 알림음이 메일 도착을 알려준다. 메일을 보낸 이는 아이디 NY152를 사용하는 조 폭스(톰 행크스). 그는 어퍼웨스트의 또 다른 곳에서 IBM 싱크패드로 접속하고 있다. 서로의 컴퓨터와 아이디만큼이나 전혀 다른 두 사람. 영화 <유브 갓 메일>은 이렇게 낯선 남녀가 온라인상에서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메일을 주고받으며 시작된다. 1997년에 시작된 AOL 서비스는 이듬해인 1998년 이 영화가 개봉하면서 엄청난 홍보효과와 더불어 급성장을 이루었다고 한다.

 


▲ 매킨토시를 쓰는 Shopgirl과는 대조적으로 IBM 싱크패드를 쓰는 NY152.

 

부모가 지어준 이름과 달리 온라인 공간에서의 아이디는 본인 스스로가 선택하고 만드는 것이다. 그만큼 사용자의 정체성과 욕구가 반영될 수밖에 없다. 영화 속 두 아이디 또한 주인공들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Shopgirl’ 캐슬린은 ‘숍 어라운드 코너(the Shop around the Conner)’라는 조그만 아동전문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around the corner’라는 이름처럼 서점은 길모퉁이에 위치해 있다. 숍 어라운드 코너 서점은 캐슬린이 어머니 세실리아로부터 이어받아 42년째 운영해온 동네 토박이 서점. Shopgirl이라는 아이디에는 서점에서 일하는 미혼여성 캐슬린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 또한, bookshop이 아니라 그냥 shop이라고 명시한 데에서 그녀가 너무 노골적으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조의 아이디는 자신이 살고 있는 주소다. 아이디치고는 무미건조하다. 거대 북 스토어 체인을 경영하며 비즈니스를 앞세우는 조 폭스다운 아이디다.

 


▲ 숍 어라운드 코너는 동네와 어울리는 아주 정겨운 서점이다.

 


▲ 폭스 북스는 ‘반즈앤노블’을 연상시키는 대형 서점 체인이다.

 

두 사람의 공통분모는 낯선 상대와 이메일을 주고받는다는 점, 그리고 규모는 다르지만 각자 서점을 운영한다는 것뿐이다. 그렇다 해도 책을 대하는 두 사람의 태도는 무척 다르다. 캐슬린은 자신의 서점에 보관된 모든 책들을 훤히 꿰뚫고 있지만, 조는 서점을 철저하게 비즈니스로 대하며 체인점 확장에만 신경을 쓴다. 캐슬린은 메일을 통해서도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2백 번 정도 읽었다며 조에게도 마음에 들 터이니 읽어보라고 추천까지 해준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조에겐 따분하기만 하다.

 


▲ 영국 TV시리즈를 표지 이미지로 활용한 <오만과 편견>.

 

이 장면에 등장하는 책 <오만과 편견>은 1995년 그 유명한 랜덤하우스 출판사의 자회사인 모던라이브러리에서 펴낸 것이다. 1813년 최초로 출간된 이후 영국의 위대한 명작 중 하나로 꼽히는 <오만과 편견>은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표지로 출간되었다. 캐슬린이 들고 있는 표지는 영국 BBC가 제작하고 콜린 퍼스와 제니퍼 엘이 주연을 맡았던 동명의 TV시리즈를 활용했다. 왜 미국 출판사가 출간한 책에 미국이 아닌 영국 드라마 사진을 활용했을까? 1995년에 영국에서 방영되기 시작한 이 드라마는 역대 BBC 클래식 드라마 중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미국에서도 평균 저녁 시청률의 2배를 넘었던 히트작. 이런 인기를 업고 가기 위해 고전소설의 표지에 현대의 드라마 이미지를 입혔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런 사례는 북 디자인계에 종종 있으나, 정작 북 디자이너에게는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물론 고전소설의 표지 디자인은 간단하지 않다. 그래서 <오만과 편견>의 경우도 세계 각국에서 다른 표지로 출판되었음에도, 대부분 여성을 모델로 한 고전회화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 약속 장소에 들고 나온 책은 다른 표지의 책이다.

 

<오만과 편견>은 영화 속에서 다시 한 번 등장한다. 이메일로만 서로의 소식을 건네던 두 사람은 결국 직접 만나기로 한다. 이때 캐슬린은 <오만과 편견> 책과 장미 한 송이를 가지고 약속 장소인 카페 랄로에서 기다리겠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때 캐슬린이 들고 나간 책이 앞선 장면에 나왔던 콜린 퍼스가 등장하는 표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만과 편견>을 200번도 넘게 읽었다는 캐슬린은 아마도 마니아답게 다양한 버전의 책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 헌책이지만 가치가 있다는 설명을 하는 아르바이트생.

 


▲ 영화 속 책의 초판본. 유명 작가가 그린 일러스트가 돋보인다.

 

영화에는 <오만과 편견> 외에도 재미있는 책이 한 권 더 나온다. 조가 친척 아이들과 함께 방문한 캐슬린의 서점에서 살펴보던 책이 바로 그것이다. 제목은 <스위스 패밀리 로빈슨>. 6명의 가족이 섬에서 겪는 모험이야기인데, 우리가 익히 아는 <로빈슨 크루소>(다니엘 디포, 1719년작)와는 다른 책이다. <스위스 패밀리 로빈슨>은 조안 데이비드 위스가 쓴 것으로 1920년 출판되었다. 서점 아르바이트생은 이 책에 실린 삽화가 손으로 그린 것이며, 비싼 값만큼 가치가 있다고 조에게 설명해준다. 하지만 영화 속에 나온 책은 아마존닷컴에서 5달러에 살 수 있는 값싼 것이다. 어떻게 된 걸까? 이 책의 실제 초판본은 90달러 정도에 거래된다. 즉, 영화 속의 대화는 초판본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활판인쇄로 제작된 초판본 내지에는 토마스 히스 로빈슨(Thomas Heath Robinson)이라는 유명한 작가가 작업한 컬러 일러스트레이션 20장이 별도로 인쇄되어 삽입되었다. 활판인쇄를 통한 요철이 느껴지는 본문용지, 그리고 특별히 선택한 회색 종이에 수작업으로 붙인 멋들어진 일러스트레이션이라니…. 듣기만 해도 황홀하다. 
1904년 옵셋 인쇄기술이 발명된 지 15년 후인 1920년의 출판시장을 미뤄 짐작하면 이 책은 초호화판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본문 431페이지에 20장의 컬러 일러스트레이션을 포함시켰다는 것이 그 사실을 입증한다. 이뿐 아니라 국내 출판시장의 경우 1970년대 후반까지도 올 컬러 출판물이 드물었다는 것을 생각해봐도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두 남녀의 아름다운 로맨스를 앞세우고 있지만, 실상 오늘날 출판업계가 겪고 있는 문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동네서점은 사라져 가고 그 자리를 대형서점과 온라인 서점들이 대신해가고 있다. 심지어 온라인 서점 아마존 때문에 미국에서는 그 유명한 서점체인 보더스가 파산하기도 했다. 
동네서점의 장점은 무엇인가? 오가다 편하게 들를 수 있는 사랑방이자, 단골손님의 독서취향을 파악한 주인의 배려 깊은 추천이 오가는 곳이다. 영화 후반부에서 캐슬린은 자신의 작은 서점이 폐업 직전까지 몰린 상황에서 조 폭스의 대형서점을 찾아간다. 그녀는 그곳의 아동물 코너를 부러운 듯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는다. 그때 어린 딸의 부탁으로 책을 사러 온 엄마와 서점직원의 대화가 들린다. “신발 나오는 책 있어요?” “저자가 누구죠?” “몰라요. 우리 딸이 꼭 사달래서….” 난감해하는 점원에게 캐슬린은 아이 엄마가 찾는 책의 저자와 시리즈까지 알려준다.

 


▲ 이런 손님의 요구도 들어주는 서점은 정말 사라지는 것일까?

 

북 디자인을 하는 입장에서는 캐슬린 같은 주인의 서점에 놓일 책을 디자인하고 싶다. 마치 할인마트의 공산품처럼 가격 할인율과 권수만 평가하는 서점이 아니라, 책을 쓴 저자와 디자인한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서점은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걸까? 
역설적이게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전자책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이 시점에 오히려 희망적이다. 디지털화 되어가는 콘텐츠의 거대한 흐름에 위압감을 느끼는 대중들은, 오히려 아날로그적인 위로를 원하게 되는 것 같다. 동네 구석에서 사멸되어가던 헌책방들이 절판된 고서적과 온라인 판매를 결합해 차츰 활로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 그 실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쿄 간다의 헌책방 거리 진보초(神保町)와 비교할 수는 없겠으나, 신촌의 헌책방 거리도 점차 활기를 되찾고 있다. 갓 나온 새 책도 물론 좋지만 헌책에는 오롯한 고유의 가치가 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활판인쇄로 찍힌 그리운 옛 책들. 세월의 때가 묻은 바래고 나달거리는 책장이지만,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었던 이들의 느낌과 감상을 함께할 수 있는 헌책을 새롭게 바라봐야 할 시점이다.

 

출처: 타이포그래피 서울 – TypographySeoul, http://www.typographyseoul.com

Design in Cinema – 3. <아메리칸 사이코>(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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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디자이너는 명함에서 살의를 느낀다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2000)>는 1980년대 경제적 호황을 맞이한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 세계 경제의 중심이라고 일컫는 월스트리트.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나와 잘 나가는 비즈니스맨이 된 27세의 패트릭 베이트만. 그와 친구, 동료들은 예약이 어렵다는 고급 식당이나 회원제 클럽을 옮겨 다니며,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늘어놓을 뿐이다. 그러나 사실 이 한가한  여피족 젊은이는 금발머리 미인들과 데이트를 즐긴 후에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두고 그들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사이코패스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자기관리와 자기애로 똘똘뭉친 이 사이코패스 살인마는 점차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살인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다. 그 대표적인 계기가 바로 ‘명함’이다. 일반인이라면 그깟 명함에 살의를 느끼냐고 할지 모르지만 패트릭에게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다. 사실, 이 대목에서 명함을 디자인해본 디자이너들은 영화 속 내용과는 별개로 그를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물론 살의는 빼고). 그들의 명함을 한번 자세히 살펴보자.

 


▲ 잘 나가는 폴 알렌이 그의 완벽한 명함을 꺼내준다.

 

여느 때처럼 모여 시시한 수다를 떨던 사내들. 그들 앞에 요즘 잘 나가는 폴 알렌이 다가와 명함을 한 장 주고 간다. 주인공 패트릭도 인쇄소를 닥달해 갓 뽑아낸 따끈따끈한 명함이라며 꺼낸다. 동료들이 멋지다며 감탄하자 “상아빛 재질이고 서체는 실리안 레일(Silinan Rail)이야”라고 으스댄다. 친구들도 뒤질세라 서로 명함을 꺼내 자신의 것이 더 멋지다고 자랑하기 시작한다. 데이비드 밴 페튼은 달걀껍질이 섞인 재질이라며 자랑한다. 티모시 브라이스는 자신의 것은 테두리 처리와 함께 돋을새김 폰트라고 한술 더 뜬다. 이에 속이 뒤틀린 패트릭이 아까 폴 알렌이 주고 간 명함이나 보자고 한다. 폴 알렌의 명함은 패트릭의 속을 더욱 뒤집어 놓는다. 멋진 색깔과 품위 있게 두툼한 폰트. 거기에 워터마크(지폐의 숨은 그림과 같이 종이를 만들 때부터 넣은 위조방지 무늬)가 들어있는 재질까지, 그야말로 완벽하게 보인다. 모두 머쓱한 표정으로 자신들의 명함을 도로 집어 넣는다. 영화 속 주인공의 표정을 보면 명함 한 장에 우쭐대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감정이 아주 실감나게 그려진다.

 

패트릭의 멋진 명함. 가라몬드 서체를 사용했다. 패트릭의 명함에 감탄하는 동료들 / 뿌듯해하며 자신의 명함을 설명하는 패트릭 이 상황을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보 면 몇가지 재미있는 점이 보인다. 첫째 우리나라와 달리 영화 속에서는 명함을 제각기 마음대로 만든다는 것. 종이 재질도 다르지만 폰트가 다 다르다. 회사의 로고타입은 아이덴티티 디자인에 의해 이미 정해져 있을 텐데 이름이나 연락처와 같은 폰트를 쓰고 있다. 월스트리트의 잘나가는 금융회사라면 분명 잘 나가는 아이덴티티 디자인 회사에 의뢰했을 것이고, 전용서체도 그에 맞게 정해져 있을 것이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다. 더구나 수십억대 연봉을 받는 그들이 사소한 명함디자인에 이리도 관심과 조예가 깊다니…. 둘째 패트릭이 자신의 명함에 쓰인 폰트가 실리안 레일이라며 아는 체 하는데 이런 이름의 서체는 없다. 원작이 소설인데 작가가 폰트이름을 허구로 지어낸 것이다. 영화 속 패트릭 명함에는 실제로는 가라몬드 클래식 스몰캡(1,500년경) 서체가 쓰여졌다. 밴 페튼의 명함은 보도니 클래식(1,800년경)이, 브라이스의 명함은 헬베티카 레귤러(1957)였다. 폴 알렌의 것은 코퍼플레이트(1901)다. 후반부에 명함 자랑을 하다가 죽을 뻔한 얼간이 루이스의 명함은 얼간이답게 어설픈 폰트를 사용하고 있다.

 

밴 패튼의 명함과 비교되는 패트릭의 명함. 과한 후가공의 브라이스 명함. 여기서 누구의 명함이 가장 적절하게 디자인된 것일까? 정답이 있는 질문은 아니지만 타이포그래피와 명함 디자인의 원칙을 따라가 보면 답이 보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이 다니는 회사 피어스 앤 피어스의 성격이다. 거액의 투자금을 받아 운용하는 금융회사의 성격에 걸맞는 폰트를 찾아야 한다. 전통과 신뢰감을 주는 폰트는 누구의 명함일까. 얼간이 루이스의 명함은 물론 제외다. 어찌 보면 서체가 탄생한 연도순이 답이다. 가장 젊은 서체 헬베티카를 가늘게 사용한 것은  너무 모던해 보인다. 경쾌하지만 새내기 같은 이미지다. 코퍼플레이트는 동판이라는 이름의 의미처럼 중공업 이미지를 가진다. 그리고 보도니는 가라몬드와 함께 오래되고 전통적인 서체이지만 패션의 이미지가 강하다. 보도니가 갖는 이미지는 보그나 조르지오 알마니처럼 패션쪽 로고에 많이 쓰인다. 심지어 알파벳권 사람들은 알마니의 간판만 봐도 이태리를 느낀다고 한다. 사실, 디자이너 입장에서 보자면 주인공 패트릭이 가장 적절한 서체를 사용한 것이다. 재질면에서도 다른 친구들은 너무 튀는 재질인데 반해, 상아빛 재질에 가라몬드를 다크브라운 색 잉크로 형압 인쇄한 패트릭의 명함은 고급스럽고 신뢰감이 간다. 영화를 보며 패트릭이 타이포그래피에 대해 조금만 더 알았더라면 괜시리 손에 피를 묻힐 필요까지는 없었을 거란 싱거운 생각도 해보았다. 하긴, 패트릭 성질에 명함을 디자인한 디자이너가 난도질 당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워터마크까지 들어간 폴 알렌의 명함. 폴 알렌의 완벽한 명함에 질투로 몸을 떠는 패트릭. 나 역시 때론 패트릭처럼 명함을 보며 살의를 느낄 때가 있다. 물론 디자인 때문만은 아니다. 연말연시, 연하장용 발송주소록을 작성하기 위해 수백 장의 명함을 살피다가 내가 살의를 느끼는 원인은 ‘우편번호’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우편번호가 없는 수십 장, 수백 장의 폼만 그럴싸한 명함의 주소를 우편번호 검색기로 일일이 검색하고 찾아 써넣어야하는 쓸 데 없는 시간 소모를 말이다. 눈앞에 상대가 있었다면 손으로라도 쓰라고 집어던졌을지 모른다. 더 웃긴 건, 영문 주소에는 우편번호가 들어있는 경우다. 그렇다고 그 회사가 외국을 상대로 하는 무역회사는 더더욱 아니었다. 도무지 영문을 모를 노릇이다. 난 누굴 만나든 명함부터 주의 깊게 살핀다. 로고타입은 어떤 서체를 썼는지, 타이포그래피와 재질,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아이디어가 넘치는 명함을 만나게 되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처음 만난 클라이언트와 방금 주고 받은 명함을 화제로 회의를 시작한다면 당연히 비즈니스도 부드러워질 것이다. 명함은 1장짜리 포트폴리오라는 말이 있다. 특히 디자이너나 디자인 회사의 경우는 100% 그렇다. 사용된 서체와 타이포그래피, 재질, 내용 등이 그 사람과 회사를 대변하는 것이다. 회사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 서체와 엉성한 자간, 배치 등은 절대로 신뢰감을 줄 수 없다.  명함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신뢰다. 기억에 남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과한 재질과 디자인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패착이다. 그보다는 업체의 성격을 신뢰감 있게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우편번호를 잊지말라. 살고 싶다면….

 

출처: 타이포그래피 서울 – TypographySeoul, http://www.typographyseoul.com

Design in Cinema – 2.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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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디자이너는 프라다를 입을 시간이 없다

 

패션잡지 세계의 인물들과 경쟁관계를 실감나게 그려내어 큰 호응을 얻었던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
이 영화는 실제 <보그>의 편집장인 안나 윈투어를 모델로 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영화의 배경은 뉴욕이다. 왜 뉴욕이어야만 했을까? 뉴욕은 문화, 예술, 경제의 중심지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미디어의 중심지이다. 거대 잡지그룹 콘데나스트와 허스트는 맨해튼의 중심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다. 이제 주인공들의 무대가 되는 잡지세계를 디자이너의 눈으로 한번 들여다보자.
뉴욕이 아닌 지방 명문대 출신인 앤디는 푸른 꿈을 안고 뉴욕으로 상경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결국 신문기자가 되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패션잡지 <런어웨이>의 편집장 미란다의 비서직에 응모를 한다. 패션과는 상관없이 살아온 앤디는 좌충우돌하며 좌절도 하지만 서서히 패션잡지 산업에 적응해가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편집장 미란다가 자신의 집으로 책을 가져오는 일을 맡으라고 지시한다. 여기에서 ‘그 책(the book)’이란 무엇일까?

앤디가 첫 출근한 날 선배 에밀리가 거만하게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는 책이라고 으스대던 책,
밤 10시 반이나 돼서야 디자인팀에서 넘어오는 책,
커다랗고 두꺼우며 포스트잇이 잔뜩 붙어 있는 링제본의 책.

 

이 책은 바로 패션잡지 <런어웨이>의 가제본이다.

편집회의에서 결정된 기획안대로 취재하고 촬영해 디자인팀으로 넘겨진 것을 레이아웃하고 컬러프린팅하여 링제본을 한 책이다. 즉 <런어웨이> 다음호의 모든 것이 담긴 책이다. 거기에 각 파트의 수정된 부분에 포스트잇이 붙여져 편집장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이 책을 편집장이 새벽까지 검토하고 아침에 출근하며 앤디의 책상 위에 던져 놓으면 각 파트 담당자들이 우루루 달려들어 분철한 후 자신의 꼭지에 체크된 수정사항대로 원고와 사진을 교체하거나 재촬영해 디자인팀으로 넘긴다. 이때가 어림잡아 늦은 오후이고 디자인팀에서 디자인이 마무리되는 때가 밤 10시 반 정도인 것이다. 이 과정을 인쇄 직전까지 끝없이 반복한다고 하니 얼마나 힘들고 지난한 일이겠는가. 물론 완성도는 비교할 수 없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영화 중반에 편집회의 장면이 나온다. 그 자리에서는 놀랍게도 겨울호를 만드는 지금 2월호 모델 섭외와 여름호 기획까지 언급된다. 실제로 보그는 발행 3개월 전부터 작업이 시작된다고 한다. 이번 시즌이 아닌 다음 시즌을 먼저 취재하기 때문이다. 그달 그달 취재해서 제작하는 한국적 상황과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발행부수만 해도 천지차이다. 국내에서는 발행부수가 수만 부에 불과하지만 보그의 경우는 100만 부가 넘어간다. 이런 규모의 경제가 세계 최고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잡지 디자이너의 밤을 불사르는 야근은 <보그>도 어쩔 수 없다. 모든 작업과정의 끝에 디자인 작업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가 정신없이 바쁜 장면은 영화 속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나이젤의 작업 장면을 보면 그의 등 뒤로 한 달 동안의 일정이 빼곡하게 적힌 일정표가 모니터에 떠 있다거나(악마는 프라다…), 편집장의 컨펌을 받기 위해 몇 개의 시안보드를 들고 안달하는 디자이너(완벽한 그녀…) 등이 그것이다.

 

앞서 말했던 링제본 책은 <런어웨이> 잡지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1급 비밀이다. 그런 만큼 신뢰할 수 없고 어설픈 비서에게는 맡길 수 없는 중책인 것이다. 만약에 이런 정보가 상대편 잡지 쪽에 넘어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영화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2004)에서 그 결과를 볼 수 있다.

제나 링크가 편집장을 맡고 있는 패션잡지 <포이즈>의 정보가 경쟁지 <스파클>로 계속해서 새어 나가는 바람에 낭패를 겪는다. <스파클>은 <포이즈>와 동일한 기획에 한발 더 앞선 내용을 다룬다. <포이즈>가 표지모델 제니퍼 로페즈를 써서 ‘그녀의 10가지 비밀’을 내놓으면, <스파클>은 동일한 표지에다가 한 술 더 떠 ‘11가지 비밀’로 다루는 식이다. 가판대에 나란히 놓여 비교되며 판매되는 상황에서는 매우 치명적이다. 잡지사의 흥망이 달린 중요한 일이랄까. 하지만 영화와 달리 패션잡지의 표지모델이 경쟁지와 똑같은 경우는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당일치기가 아니라 사전에 섭외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설사 잡지사가 몰랐다고 하더라도 모델 자신이 같은 타깃층의 잡지에 표지로 등장하는 건 도덕적 책임에 의해서라도 사전에 거절하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이다.

예외적인 것은 영화잡지나 시사잡지이다. 당시의 최고 이슈가 되는 인물을 표지로 하기 때문에 겹칠 확률이 높다. 이때 그 인물을 어떤 시각으로 다루어 변별성을 주느냐가 디자인팀의 고민이다. 실제로 과거 노태우 대통령 퇴임 후 비자금 사건 때 시사주간지의 표지가 충돌했던 적이 있다. 두 주간지의 표지가 만원짜리 지폐의 세종대왕 얼굴에 노태우 대통령 얼굴을 합성했던 것이다. 같은 인물이 나왔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이디어가 겹쳤다는 것이 문제였다. 두 시사지가 가판대에 걸려 있는 모습에 보는 내 마음이 다 졸아들 정도였으니 디자인을 한 당사자들은 오죽했을까. 이 교훈 덕분에 표지가 겹칠 만큼 큰 이슈의 표지를 디자인할 때는 경쟁지 디자이너는 평소에 어떤 방식으로 작업해 왔고 이번 이슈에 어떻게 대처할까 하는 데까지 신경을 쓰게 되었다. 잡지를 디자인한다는 것은 결국 수많은 커뮤니케이션의 결과이며 다양한 상황을 전제로 판단한 콘텐츠의 적합한 시각화 작업이다.

 

영화 <완벽한 그녀에게…>를 보면 주인공이 길거리 가판대에서 자신이 만든 잡지 위에 전시된 경쟁지를 몰래 들어내서 구석으로 가져다 놓는 장면이 있다. 시사주간지 디자인을 하던 시절 광화문 가판대에서 내가 저질렀던 행동이 떠올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잡지디자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한 가지는 자신이 디자인하는 매체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다.

 

출처: 타이포그래피 서울 – TypographySeoul, http://www.typography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