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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in Cinema – 11. <맨 인 블랙>(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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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미래를 실현하다

 

멕시코와의 국경지대. 미국으로 밀입국하려던 멕시칸 일행이 검문에 걸린다. 이때 검정색 정장을 입은 두 사내가 나타나 국경수비대를 제치고 밀입국 시도자 중 유독 한 명만을 숲속으로 데려가 심문한다. 심문을 받던 자는 알고 보니 외계인. 목격자들인 국경수비대들에게 기억을 지우는 플래시를 사용하고 자리를 뜨는 사내들의 정체는 MIB의 비밀요원.

장면이 바뀌고 뉴욕의 중앙역인 그랜드 센트럴 역 앞. 제임스 에드워드(윌 스미스) 형사가 범인을 추격 중이다. 범인은 인간이라고 믿기에는 너무도 월등한 점프력과 체력을 가졌다. 결국 달아난 곳은 하얀색 달팽이를 닮은 건물의 옥상이다. 바로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이다.

 


▲ (위) 달팽이 또는 화장실 좌변기로 불리며 조롱받았던 구겐하임 미술관.
(아래 좌) 나선형의 내부는 꼭대기 층부터 경사로를 내려오며 작품을 감상하도록 하는 구조.
(아래 우) 구겐하임 미술관의 모형을 검토하는 생전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이 건물은 미국의 가장 위대한 건축가로 칭송받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가 말년에 설계한 작품이다.
1867년생인 프랭크는 68세이던 1935년에 자연 속의 폭포와 어우러지는 주택인 ‘낙수장(Falling Water)’이라는 작품으로 그의 건축경력의 정점을 찍었다. 그로부터 10여 년 뒤인 1943년에 갑부이자 미술품 수집가인 솔로몬 R 구겐하임으로부터 자신의 미술품을 전시할 미술관을 설계해달라는 의뢰를 받은 프랭크는 그가 평생을 통해 추구해왔던 유기적 건축에 걸맞은 나선형 설계를 내놓았다. 기존의 미술관들이 수평으로 이동하며 작품을 감상하고 방과 방으로 연결되는 구조였다면, 구겐하임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꼭대기 층에서부터 둥근 나선형 경사로를 천천히 걸어 내려오며 감상하는 획기적인 구조였다. 이 설계안이 공개되자 예술가와 평론가들의 많은 반대에 부딪치게 된다. 게다가 2차세계대전까지 겹쳐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고, 그 사이 의뢰주가 사망하는 등 악재 끝에 수차례에 걸친 설계변경을 거치며 완공까지 16년이나 걸리게 된다. 결국 프랭크는 완공 몇 개월 전인 1959년에 92세의 나이로 미술관 개관을 보지 못한 채 안타깝게 세상을 뜨고 만다.

자신이 추격하던 용의자가 구겐하임의 옥상에서 투신자살을 하자 그를 추격했던 제임스는 과잉추격 혐의로 궁지에 몰리고 만다. 이때 MIB의 요원 K가 나타나 제임스를 구해준다. 요원 K는 제임스에게 MIB라는 조직에 대해 알려주며 요원으로 지원할 것을 권한다.

 


▲ (위) MIB에 지원하기 위해 모인 군관계 엘리트들과 주인공이 앉은 의자가 아이볼 체어.
(아래) 핀란드의 디자이너 에로 아르니오.
(우) 아이볼 체어.

 

MIB는 외계인 대응기구로서 정부의 어떠한 간섭도 받지 않는 독자적인 비밀기구다. MIB에 시험을 보러 온 지원자들은 뉴욕시의 평범한 형사인 제임스를 제외하곤 대부분 군 관련 엘리트 출신들이다. 그들이 필기시험을 볼 때 앉았던 의자가 평범하지 않다.
이 의자는 MIB II의 포스터에도 등장하는 의자다. 달걀의 반을 갈라 만든 듯한 모양의 이 의자는 ‘볼체어(Ball Chair)’로 유명한 핀란드의 디자이너 ‘에로 아르니오(Eero Aarnio)’가 1956년에 디자인한 작품으로 ‘아이볼 체어(Eyeball Chair)’다. 그가 1963년에 디자인한 볼체어는 ’화성침공‘에서도 등장했다. 이래저래 SF영화의 단골 의자인 셈이다. 1932년생인 아르니오는 나이가 들수록 훨씬 더 실험적인 디자인을 시도했다. 그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우리의 주위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강아지 모양의 퍼피, 새모양의 티피, 망아지 모양의 포니에 이르기까지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발랄하다.

 


▲ 발랄하기 짝이 없는 아르니오의 의자들. 좌측부터 포니, 퍼피, 티피.

 

엉뚱한 발상의 좌충우돌 형사인 제임스는 K의 보증으로 정식요원 J로 거듭나게 된다. 현재까지의 모든 신원정보가 삭제되고 심지어는 지문까지도 지운 채 J라는 이니셜로만 통하는 외계인 대응부서의 신출내기 요원이 된다. 요원이 되자마자 위수지역을 이탈하려는 외계인을 체포하라는 출동명령을 받는 J. J가 국장 제드의 방에서 앉아 있던 의자가 낯익다. 바로 덴마크의 건축 디자이너 아르네 제이콥슨(Arne Emil Jacobsen, 1902~1971)이 1958년에 로열 코펜하겐 호텔을 위해 디자인했던 ‘스완의자(Swan Chair)’다.

 


▲ (위) MIB 본부의 인테리어와 잘 어울리는 스완의자.
(아래 좌)  덴마크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아르네 제이콥슨.
(아래 우) 스완의자.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1997년도 뉴욕 배경인 영화이지만 MIB의 본부는 외계인들의 문명을 흡수한 최첨단 기술의 집약처이다. 그런 곳에 왜 1950년대 디자인된 의자가 놓여 있고, 그 당시에 지어진 구겐하임 미술관이 등장할까?

 


▲ 유사한 형태를 가진 볼체어와 구 소련의 우주선 스푸트니크.

 

그 이해를 위해서는 디자인 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세기말 화려하게 꽃피웠던 아르누보(Art Nouveau)에 이어 1930년대를 구가했던 아르데코(Art Deco)는 불황과 2차세계대전을 겪으며 그 위세가 사그라졌고, 모던 디자인(Modern Design)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아르누보와 아르데코가 형태적 차이는 있으나 장식적인 것에 반해 모던 디자인은 장식을 최대한 배제하고 유선형의 형태를 특성으로 한다. 그 특성에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 즉 구 소련과 미국이 우주선을 쏘아 올리며 경쟁하던 우주시대가 끼치는 영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소련의 우주선 스푸트니크의 모양은 모던 디자인의 대표적 표상처럼 보인다.

 


▲ 영화의 마지막 격전지는 뉴욕 세계박람회가 열렸던 장소.

 

영화에서 보여지는 모던 디자인의 흔적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바퀴벌레 외계인과 최후의 결전을 치르는 장소는 뉴욕주의 외곽인 퀸즈의 ‘플러싱 메도우 코로나 파크(Flushing Meadow-Corona Park)’다. 극중에서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인간과 처음 접촉하고 화친을 맺은 장소이자 그들이 타고 온 우주선으로 조형물을 만든 장소로 등장한다. 실제로 이 장소는 1964년 뉴욕 세계박람회가 열렸던 장소다. 이 박람회의 테마가 ‘이해를 통한 평화’, ‘인간의 성취에 의한 확대된 우주와 축소된 세계’였다. 이러한 테마와 거대한 지구본 모양이며,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조형물이 영화의 배경으로는 안성맞춤으로 보인다.

등장인물이 착용하는 선글라스와 정장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수트(Lounge Suit, 라운지 수트의 준말)의 발생시기를 1840년 정도로 추정한다고 하는데 초기의 형태에서 그다지 많은 변화가 없다. 더구나 상복과도 같은 검은 정장은 색상마저 절제되어 있어서 시대를 초월하는 디자인이다. 그런 이유로 검은 정장은 맨 인 블랙 외에도 SF영화의 단골 의상이기도 하다. ‘메트릭스(The Matrix, 1999)’의 미스터 스미스와 ‘가타카(Gattaca, 1997)’의 주인공 빈센트도 검정 정장을 입었었다.

 


▲ 검은색 정장은 시대를 초월하는 디자인의 대표적인 예.

 

영화의 도입부에서 K가 제임스에게 말한다.
“인간들은 1500년 전에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 생각했고, 500년 전에는 지구가 편평하다고 생각했어.
5분 전에 너는 지구에 인간만 사는 줄 알았지. 내일은 어떤 진실이 기다릴까?”
흔히들 SF작가를 현대의 예언자들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디자이너는 현재와 미래의 사이를 연결하는 예언의 실현자가 아닐까?

 

출처: 타이포그래피 서울 – TypographySeoul, http://www.typographyseoul.com

Design in Cinema – 10. <킹콩>(1933, 1976,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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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킹콩의 시선으로 바라보다

 

뉴욕이란 도시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수많은 상징 중에서 가장 압도적인 것은 한 건물이다. 건물치고는 이름도 거창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Empire State Building)’ – 엠파이어 스테이트는 뉴욕스테이트, 즉 뉴욕주의 별명이다. 윌리엄 램의 설계로 1931년에 세워진 이 건물은 수많은 영화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영화 <러브 어페어>나 <잠 못 이루는 시애틀> 같이 로맨틱한 곳의 배경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주로 테러나 공격의 대상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이 빌딩에 오른 것은 킹콩이다.

<킹콩>은 영화로만도 세 번 제작되었다. 1933년에 제작된 첫 번째 영화에서부터 킹콩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오른다. 두 번째, 1977년 작에서는 지금은 사라진 세계무역센터에 오르지만 세 번째인 2005년에는 다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다. 물론 배경이 첫 번째 영화와 같기도 하지만 여기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영화를 감독한 피터 잭슨(Peter Jackson )이 시대적 배경을 1933년으로 정한 것은 이 시대가 “마지막 탐험의 시대”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공위성도 없고, 전자기기와 컴퓨터가 없는 아날로그 기계시대였기 때문에 미지의 세계가 가능하고, 모험과 탐험도 가능한 시절이었던 것이다.

 


▲ (위) 센트럴파크. 지금은 녹지공간이지만 대공황 당시에는 판자촌 슬럼가를 방불케했다.
(아래, 좌) 기계의 발달은 화석연료 소비량을 늘렸고 도시는 스모그로 가득했다.
(아래, 우) 전세계적으로 몰아친 대공황은 대량실업을 불러일으켰다.

 

황량한 센트럴파크(Central Park)의 전경과 함께 펼쳐지는 음울한 1930년대의 뉴욕 풍경. 거리는 스모그로 가득 차있고, 실업자들은 줄을 서서 구세군이 나눠주는 구호식품을 기다리고 있다. 블랙 먼데이(Black monday)라고 일컫는 1929년 10월 24일, 뉴욕 주식시장의 대폭락으로 세계는 경제공황에 빠지고 제 1차 세계대전 전승국이었던 미국 경제의 황금기도 맥을 추지 못하고 몰락하던 시기다.

조그만 소극장에서 코메디를 연기하는 여주인공 앤 대로우(나오미 왓츠)도 극장이 차압을 당하자 갈 곳이 없어지게 된다. 자신이 흠모하는 극작가 잭 드리스콜이 소속된 사무실의 관계자를 찾아가 일자리를 하소연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변두리 스트립쇼 극장에 가보라는 조언뿐이다.

 


▲ (위) 대공황 시절, 무명 여배우의 선택은 좁기 그지 없다.
(아래, 좌) 투자자들을 설득하는 칼 덴햄 감독.
(아래, 우) 투자자들의 추적을 뿌리치고 해외 촬영을 떠나려는 칼 감독이 수배한 배, 벤쳐호.

 

한편 도시의 다른 한 곳에서는 영화감독 칼 덴햄(잭 블랙)이 투자자들을 위한 시사회를 열고 있다. 담배연기 자욱한 시사실 분위기는 무겁다. 투자자들은 칼의 독특한 취향과 고집으로 가득한 영화가 못마땅하기만 하다. 결국은 영화를 접고 다른 영화사에 팔기로 결론을 내린다. 이를 눈치 챈 칼은 한 발 앞서 조수와 함께 촬영 기자재를 빼돌려 해외 촬영을 떠나기로 한다. 그러나 섭외했던 여배우가 출연을 거부한 탓에 급작스레 여배우를 섭외하게 된 칼. 변두리 스트립쇼 극장가를 찾은 칼의 눈에 스트립쇼 극장 앞에서 망설이다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서는 앤의 모습이 들어온다. 자존심을 지키고자 돌아섰지만 며칠째 식사를 하지 못한 앤은 노점상의 사과 한 알을 훔치다 들키고 칼의 도움으로 곤경을 면하게 된다. 앤은 갑작스레 식사까지 대접하며 캐스팅 제의를 하는 낯선 남자의 제안과 정체가 불안하지만 잭 드리스콜이 극본을 쓴다는 말에 칼을 따라 항구로 나선다. 영화 극본을 쓰던 잭 드리스콜(애드리안 브로디)을 감언이설로 배까지 오게 한 칼은 선장을 구슬려 마구잡이로 배를 출발시키고, 잭은 어쩔 수 없이 무모한 모험의 일원이 되고 만다. 그들의 앞에 놓인 운명을 예고라도 하듯이 배의 이름마저 벤처(Venture)다.

 


▲ 해골섬의 장관을 찍기 위해 스탭과 함께 상륙하려는 칼 감독과 일행.

 

한가로이 선상 촬영을 하며 순항하던 배에 칼을 체포해 랭군으로 귀항하라는 전보가 들어오고 촬영장 분위기는 어수선해진다. 그러던 중 배는 풍랑과 함께 위치를 가늠할 수 없는 해골섬으로 떠밀려 간다. 칼은 미지의 세계를 필름에 담을 욕심으로 일행을 재촉해 섬으로 향하지만 원주민에게 앤을 뺏기고, 목숨만 건져 간신히 모선으로 돌아온다.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구출대와 함께 섬으로 가지만 이미 앤은 원주민에 의해 거대한 고릴라 ‘킹콩’의 제물로 바쳐지고 난 뒤다.

 


▲ (위, 좌) 킹콩에게 제물로 바쳐진 앤 대로우.
(위, 우) 킹콩의 1:3대 결투. 이 장면만 없었더라면 더 멋진 작품이었을 텐데 아쉽다.
(아래) 모험을 함께한 뒤 킹콩의 숙소에서 석양을 바라보는 두 주인공.

 

구출대는 킹콩을 뒤쫒지만 역부족이다. 앤은 기지를 발휘해 코메디 연기를 펼쳐 킹콩을 구슬린다. 그러다 영화는 갑자기 쥬라기 공원으로 배경을 옮긴 듯 공룡들이 등장하고 심지어 앤을 보호하려는 킹콩과 티라노 사우르스의 1대 3 사투가 벌어진다.(이 부분은 정말 넌센스다.) 이런 고난을 겪으며 킹콩과 앤 사이에는 신뢰의 기류가 생기기 시작한다. 킹콩의 보금자리인 절벽 위에서 둘이 함께 석양을 바라보며 교감하는 장면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천신만고 끝에 앤을 구조한 잭이 킹콩의 추격을 받으며 돌아오지만 칼은 킹콩을 마취제로 생포하기 위해 둘을 이용한다. 영화는 이미 망쳤으니 대신 킹콩을 데려가 흥행을 시키겠다는 칼과 선장의 욕심이 결탁된 것이다.

 


▲ (좌) 화려한 조명과 도시.
(우) 극장의 무대위에 선 킹콩.

 

영화는 다시 뉴욕. 킹콩의 생포에 반대를 했던 앤은 다른 극장의 무용수로 돌아가고, 잭은 소규모 극장에서 자신의 극본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그 순간 화려한 조명의 타임스퀘어의 대규모 극장에서는 칼이 ‘세계 8번째 불가사의’라며 킹콩을 소개한다. 크롬으로 제작된 쇠사슬과 족쇄를 채웠다고는 하지만 킹콩을 제어하기는 역부족이다. 순식간에 극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앤을 구조했던 잭을 발견하고 추격하는 킹콩과 택시를 몰며 킹콩을 외곽으로 유인하려다 충돌해 정신을 잃은 잭. 그 일촉즉발의 순간 킹콩의 앞에 나타난 앤. 킹콩은 앤을 데리고 군 추격대를 피해 센트럴파크로 도망을 간다. 재회한 둘은 잠시나마 센트럴파크의 얼음이 언 호수 위에서 망중한을 지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추격을 피해 달아나게 된다. 쫒기던 킹콩의 눈에 높이 치솟은 거대한 건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들어온다.

 


▲ (위, 좌) 마침내 다시 만난 킹콩과 앤 대로우 /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위에서 바라보는 일출. 킹콩의 고향 풍경과 닮았다.
(중) 킹콩 뒤로 보이는 반복적인 특징의 아르데코 문양.
(아래) 킹콩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위에서 앤을 뒤로하고 슬픈 죽음을 맞이한다.

 

빌딩의 꼭대기로 올라간 킹콩과 앤. 둘 앞에 펼쳐지는 낯익은 풍경. 그러나 이번엔 석양이 아니라 아침 해가 떠오르는 풍경이다. 킹콩은 자신의 절벽에서 앤이 “아름답다!”며 가슴에 손을 대던 제스쳐를 그대로 보여준다. 빌딩에서 바라보는 일출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 의미를 이해한 앤의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평화의 시간도 잠시 킹콩을 제거하기 위한 비행편대가 나타난다. 킹콩은 앤을 밀쳐내고 알 수 없는 대상들의 적의에 맞서 저항하다 결국 포기의 눈길로 빌딩 아래로 스러져간다. 킹콩의 주검 앞에서 한 기자가 의문을 품는다. ‘왜 저 높은 곳까지 올라가서 죽었을까? 혹 자신의 운명을 알기라도 했던 걸까?’

왜 수많은 건물 중에서도 꼭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어야만 했을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뉴욕의 대표적인 아르데코 양식의 건물이다. 아르누보에 이어 세계를 휩쓴 양식인 아르데코는 1925년 파리에서 열린 ‘현대장식미술, 산업미술국제전’에서 비롯된 장식미술인 아르 데코 라티프(art decorafif)의 약칭이다. 곡선적인 아르누보와 달리 대칭적인 구도와 직선적 형태, 태양광선 모양, 지그재그, 첨탑 등의 기하학적 모티브와 꽃, 동물 그리고 인간의 형체를 기하적 형태로 표현한 장식적 스타일이다.

 


▲ (좌) 멀리서 보이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우) 입구 위의 아르데코 장식들.

 


▲ (좌) 록펠러센터 메인건물에 붙어있는 아르데코 스타일의 부조 작품(리 로우리에 1933년 작).
(중) 거대 잡지사인 허스트 본사. 아르데코 양식의 원래 건물을 유지한 채 그 위로 새로이 증축을 했다.
(우) 아르데코 양식의 건물과 외벽 장식물들.

 

더 이상 예전의 수공예적 신전과 궁전이 세워지지 않는 근대의 시기에는 자본주의가 신성의 이미지를 대체해 나갔다. 자연적인 곡선이 배제되고 인공적인 선과 형태로 새롭게 장식된 아르데코 스타일의 마천루들은 수직적으로 치솟으며 새로운 신성인 ‘기술과 문명’의 상징으로 근대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장악해나갔다. 그 중에서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그 규모와 기술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기술과 자본의 거대 성전이나 다름없었다. 아르데코 양식 중에서도 특히 남성적인 면이 강조되었다. 완공 당시부터 41년간 세계 최고층 건물로서 아르데코의 메트로폴리스라 불리는 맨해튼에서도 제왕자리를 지켜왔던 건물이다.
그래서 정글의 제왕 킹콩의 눈에도 그 상징성이 보였던 것은 아닐까? 거리에 수많은 알파벳 간판은 읽을 수 없었지만, 멀리서도 눈에 띄고, 화려한 조명과 함께 아르데코로 장식된 그 빌딩은 알아 볼 수 있었으리라. 자신의 몸을 숨길 수도 없고, 자신이 지배할 수도 없는 문명의 정글에서 최후를 맞이하기에 어울리는 장소로는 그 곳 밖에 없다는 것을.

 


▲ (좌, 중) 1925, 1930년에 발행된 뉴요커 잡지의 아르데코 양식의 표지.
(우) 아르데코 양식의 대표적 디자이너인 카상드르의 ‘노르망디’.

 

1930년대에는 그래픽 디자인계도 아르데코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수많은 포스터와 잡지 표지를 아르데코 양식의 일러스트로 가득 채웠다. 노르망디라는 포스터로 유명한 카상드르가 대표적이다. 웅장한 구도와 수직적 배치와 미래적인 상황 등의 묘사가 특징적이다. 이 시기의 애용된 폰트들은 세리프가 없고 가느다란 산세리프들이 주를 이룬다. 전통적인 세리프체보다는 미래적인 느낌을 주는 산세리프가 어울렸을 것이다.

영화는 1930년대를 재현하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썼지만 미술스텝에는 타이포그래피에 조예가 있는 사람은 없었나 보다. 거리의 간판 중에는 딘(DIN) 폰트처럼 영화의 시대적 배경보다 뒤에 나온 폰트들이 간혹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타이포그래피를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이 역사극에 몰입해서 보기 힘들다는 말이 있나 보다.

 

출처: 타이포그래피 서울 – TypographySeoul, http://www.typographyseoul.com

Design in Cinema – 9. <뉴욕, 아이 러브 유>(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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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택시를 바라보며 답답함을 느끼다

 

이름 모를 거리를 가득 메운 차량 행렬. 그중 유독 노란색 택시가 많다면 십중팔구 그곳은 뉴욕 맨해튼이다. 맨해튼에서 벌어지는 사랑 이야기들을 옴니버스로 구성한 영화 <뉴욕, 아이 러브 유 New York, I love you>(2009)의 시작은 하나의 택시에 동시에 올라탄 두 남자의 조우로 시작된다.(맨해튼의 도로는 대부분 일방통행이어서 서울과 달리 택시를 타고 내릴 때 양쪽 문 모두를 사용한다. 그래서 가끔 동시에 탑승하는 경우가 생긴다.) 토박이 뉴요커인 두 사람은 택시 운전사에게 서로가 잘 아는 지름길로 가기를 고집하다가 결국 승차 거부를 당한다.

 


▲ 뉴욕의 거리를 뒤덮은 노란 택시의 물결.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히 요약되지 않는다. 12개의 에피소드를 11명의 감독이 27명(주연급만)의 유명 배우들과 촬영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유대정교 남자를 위해 삭발을 하는 나탈리 포트만부터, 고급 창녀인 매기 큐를 유혹해보려는 일러스트레이터 에단 호크, 전화로만 이야기하는 음악감독의 여비서 크리스티나 리치와 사랑에 빠지는 올랜드 블룸까지, 어떻게 이런 배우들을 한 영화에 담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출연진이 화려하다. 게다가 뉴욕이 배경인 영화답게 다양한 인종과 문화, 그리고 사랑의 에피소드가 이리저리 얽힌다. 서로 다른 이야기들 같지만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과 다른 에피소드의 주인공 들이 스치듯 연결되면서, 영화는 맨해튼이란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사랑 이야기들을 속삭이듯 풀어낸다. 12개의 에피소드들을 이어주는 매개는 다름 아닌 뉴욕의 거리, 바, 식당 그리고 뉴욕 아이콘인 택시다.

 


▲ 택시 안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주인공들.

 

뉴욕의 검은 아스팔트를 노랗게 뒤덮는 택시. 그러나 이 노란 색깔은 뉴욕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1960년대 초반 뉴욕에는 다양한 색상의 택시가 있었다. 그러다가 1967년, 등록택시를 불법영업택시(gypsy cab)와 구별하기 위해 노란색으로 도색하는 법안이 실행되었다. 그런데 뉴욕 택시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인식되어 있는 이 노란색과 체크무늬가 사실 1915년 시카고에서 시작되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렌트카 업계의 대명사인 허츠의 창업자 존 허츠, 택시회사를 운영하던 월든 쇼는 혼잡한 거리에서도 인식하기 쉬운 색을 연구해달라고 시카고대학교에 의뢰했고 그 결과 노란색과 체크무늬가 채택되었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지금은 사라진 뉴욕의 상징 체커 택시. / 뉴욕 택시의 주력 차종인 포드의 크라운빅토리. / 2014년부터 투입될 미래형 뉴욕 택시.

 

뉴욕의 택시는 색깔뿐 아니라 차종도 세월에 따라 변화했다. 뉴욕 택시는 1890년 전기택시로 시작되어 1920년 체커택시로 전성기를 맞았는데 로버트 드니로가 주연한 <택시 드라이버>(1976) 속 택시의 차종이 바로 체커택시다. 1920년대부터 생산되어 뉴욕 택시의 주력이었다가 1980년대에 들어와 단종되었다. 그 뒤는 시보레의 카프리스와 포드의 크라운빅토리가 이어갔다. 현재 뉴욕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택시의 차종이 크라운빅토리다. 2014년부터 교체될 새로운 뉴욕의 택시 차종은 투명 천정, 승객의 USB충전 기능, 항균좌석 등을 갖춘 니싼의 NV200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연간 5천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뉴욕의 택시는 약 13,000대에 달한다. 이를 6만 명의 택시기사가 운행하는데 그중 82%가 미국 외에서 출생한 자들이라고 한다. 1980년대 이후 급증한 이민자들의 영향일 것이다.

 


▲ 새로운 디자인 도입 전의 뉴욕 택시. 요금표시가 앞문에 위치하고 있다.

 

1967년 노란색으로 변신한 뉴욕의 택시는 별다른 심볼이나 로고도 없이 색상 자체로 뉴욕의 명물로 인식되어 왔다. 기존에는 스텐실로 새겨진 ‘N.Y.C. TAXI’가 전부였다. 그러던 중 뉴욕시 택시 & 리무진 위원회(TLC, Taxi & Limousine Commission)의 요청에 의해 새로운 로고타입 디자인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 새로운 뉴욕 택시 디자인을 담당한 스위스 출신 디자이너 클라우디아.

 

위원회는 스마트디자인사(Smart Design)에게 뉴욕 택시를 대표할 로고타입과 외장 디자인을 의뢰했다. 이 작업은 클라우디아 크리스틴(Claudia Christine)이라는 스위스 출신 디자이너가 중심이 되어 팀 작업으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세계 각국의 택시와 함께 뉴욕 택시의 변천을 조사하고자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 짐 자무시 감독의 <지상의 밤> 등이 포함된 뉴욕 필름 아카이브까지 연구했다고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25개의 시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디자인의 여정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스마트디자인사와 시장실과의 조율 과정이 길어지면서 여러 가지 수정이 가해졌다. 스마트디자인에서 제시한 초기 시안이 주목성이 떨어진다는 시장실 측의 지적에, 스마트디자인은 과감히 모든 단어를 배제하고 검정색 원으로 감싼 ‘대문자 T’를 제시한다. 모두 택시인 것을 아는 마당에 굳이 단어를 넣을 필요가 없으니 상징적으로 크게 넣자는 것이 데빈 스토웰 스마트디자인사 대표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당시 뉴욕시가 지하철 신규 노선의 명칭을 ‘T라인’으로 할 것을 계획 중이었던지라 반대에 부딪혔다. 뉴욕의 지하철 노선표시가 원형속의 알파벳 대문자인 것을 고려하면 너무 유사한 느낌이라 혼돈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일부에서는 보스턴의 운송시스템 심볼과 유사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 (위) 초기 시안. / 단어들을 생략한 시안. / 단어들이 삽입된 절충안.
(아래) 스마트디자인이 완성한 최종 디자인. / 울프 올린스가 디자인한 NYC 로고가 삽입된 최종 결정안. 원형 T와 A, 그리고 A와 X 사이의 간격이 엉성해 보인다.

 

결국 디자인은 원형 T에 AXI와 NYC가 추가되었다. 문제는 디자인사와 상의 없이 NYC라는 단어의 서체가 뉴욕시 관광마케팅사(NYC & Company)에서 새로 제정한 뉴욕시 관광로고로 변경되었다는 데 있다.

 


▲ 뉴욕타임즈에서 공모한 리디자인 시안.

 

이 디자인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호불호가 갈리고 있다. 뉴욕의 대표신문인 <뉴욕타임즈>에서는 탱그램과 자사의 디자이너를 포함한 8명의 디자이너에게 의뢰한 리디자인 안을 지면에 게재했고, 한술 더 떠 일반인을 상대로 한 리디자인 공모까지 진행하기도 했다. 그만큼 뉴욕의 택시는 뉴요커들에게는 간과할 수 없는 애정의 대상인 것이다.

 


▲ 스마트디자인사의 초기안과 최종 결정안. 자간이 엉성하다.

 

논란의 대상을 살펴보면 몇 가지로 압축된다. 먼저 동그라미 T 부분부터 살펴보자. T를 원형으로 감싸면서 왼쪽의 NYC와 오른쪽의 AXI의 시각적 균형을 꾀했을지 모르지만 TAXI가 T/AXI로 분절되면서 가독성이 떨어졌다는 의견이 있다. 게다가 원형 T와 A, 그리고 A와 X 사이의 간격이 제대로 조정되지 않아 엉성해 보인다는 지적이다.

 


▲ 달리는 택시에서는 단어가 읽히지 않는다. / 울프 올린스가 디자인한 뉴욕 관광마케팅을 위한 로고와 그리드시스템.

 

다음으로는 NYC 로고 부분이다. 기존의 가독성 좋은 스텐실 로고와 달리 뉴욕시 관광마케팅사에서 제정한 로고는 굉장히 두껍다. 두껍다 못해서 아예 검정 덩어리로 보인다. 교통표지판 등의 가독성은 글자 안의 빈 공간이 여유로울 때 효과적이다. 이에 비해 현재의 로고는 여백이 너무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속도를 내며 달리는 택시 문에 새겨진 상태로는 가독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혹자는 지금은 사라진 3.5인치 플로피디스크의 재림이라고까지 비웃고 있다).

사실 이 로고는 택시 로고와는 별도로 뉴욕의 관광마케팅을위해 울프 올린스사(Wolff Olins)가 디자인한 것이다. 애초에 인쇄물과 웹사이트 등 매체에 사용될 것을 전제로 한 디자인한 로고였다. 그런데 움직이는 자동차에 쓰이면서 엉뚱하게 불똥이 튀어 욕을 먹게 되었다. 서로 다른 용도로, 각각 다른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것을 발주자인 관공서에서 편의적으로 조합하다 보니 용도와 기능에서 충돌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문제는 뉴욕에서도 피할 수 없는 고질병인가보다.

2009년 5월부터 적용된 서울시 해치택시의 색상은 ‘꽃담황토색’이다. 회색빛 서울의 도심에 생기를 준다는 취지로 선택된 것이다. 전통 색으로서의 꽃담황토색은 분명 중요한 의미다. 하지만 전통건축물에 사용된 색과 현대적 교통수단에 적용된 색은 매체의 재질 차이 만큼이나 휘도와 색감에서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이 색들이 친숙하지 않고 이물감을 주는 이유는 생활 속에서 사라졌던 예전의 색을 인위적으로 되살려낸 탓에 낯설기 때문일 것이다.

 


▲ 너무 구체적인 도상이 들어간 해치택시. 요금표시도 없다.

 

도시의 아이덴티티를 담는 작업은 유행보다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변치 않을 힘을 갖도록 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해치라는 구체적인 형상과 장식적인 디자인은 많은 우려를 표하게 한다. 디자인은 더하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것이란 말을 다시 한 번 떠올려봐야 할 때이다.

 

출처: 타이포그래피 서울 – TypographySeoul, http://www.typographyseoul.com

Design in Cinema – 8. <세렌디피티>(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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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달러 속의 상징을 파헤치다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 퍼지는 뉴욕 블루밍데일 백화점의 잡화 코너. 하나밖에 남지 않은 장갑을 동시에 집으려던 남녀, 사라(케이트 베킨세일)와 조나단(존 쿠삭). 이들은 서로에게 장갑을 양보하다가 첫눈에 의기투합해 근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식당 이름은 ‘세렌디피티3(Serendipity3)’. ‘우연한 행운’을 의미하는 이 단어는 앞으로 펼쳐질 둘의 운명을 암시해주는 듯하다. 이야기 삼매경에 빠졌던 둘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헤어진다. 그러나 불과 몇 분 만에 다시 그 식당에서 마주친다. 조나단은 머플러를, 사라는 장갑이 담긴 쇼핑백을 두고 나왔던 것. 뭔가 인연이 있다고 생각한 그들은 센트럴파크의 스케이트장에서 짧은 데이트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 하나밖에 남지 않은 장갑으로 시작된 인연 ‘세렌디피티’. 그들의 운명을 예감이라도 한 듯한 이름 / 두 사람이 데이트를 하는 센트럴파크의 스케이트장 울먼링크.

 

다시 헤어져야 할 시간. 조나단은 연락처를 알려 달라고 조른다. 사라는 쪽지에 전화번호를 적어 조나단에게 건넨다. 그 순간 갑자기 불어온 돌풍에 날아가버린 쪽지가 길거리의 쓰레기와 뒤섞인다. 운명을 강하게 믿는 사라는 불길한 예감에 그와 인연이 아니라며 돌아선다. 그러나 조나단의 끈질긴 애원에 사라는 지갑에서 5달러짜리 지폐를 꺼내 조나단에게 전화번호를 적으라고 한다. 그리고는 그 지폐를 가판대에서 껌을 사는 데 사용한다. 조나단과의 만남이 운명이라면 그 지폐가 자신에게 되돌아올 테니 그때 연락하겠다는 것. 그러자 조나단은 사라의 연락처를 어딘가에 써놔야 자신도 나중에 찾으러 갈 것 아니냐고 반박한다. 사라는 가방 속에서 두꺼운 책을 꺼내 표지 안쪽에 자신의 연락처를 적고서는 내일 아무 서점에나 가 중고로 팔 테니 언젠가 그 책을 발견하면 자기에게 연락을 하라고 말한다. 조나단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운명을 믿는 사라가 답답하기만 하다. 그는 오늘의 만남을 운명에 맡기지 말자고 사라를 설득한다. 그러자 사라는 근처의 호텔로 조나단을 이끈다. 서로 다른 엘리베이터를 타고 각자 원하는 층을 누른 뒤 같은 층에서 문이 열려 만나게 되면 운명이라는 것이다. 둘은 같은 층을 누르지만 다른 승객들의 방해와 엘리베이터 고장 탓에 만나지 못한다.

 


▲ 깔끔한 상태의 5달러 지폐 뒤에 자신의 연락처를 적는 조나단 사라는 자신의 연락처를 책 안쪽에 적는다 /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조나단이 나오길 간절히 기다리는 사라.

 

운명을 믿는 사라와 믿지 않는 조나단은 그렇게 헤어지고, 몇 년의 시간이 흐른다. 서쪽 끝 샌프란시스코에서 정신과 의사로 일하는 사라와 동쪽 끝 뉴욕의 스포츠채널의 유망한 PD, 조나단. 둘 다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아직도 서로를 잊지 못하는 상태이다. 게다가 옛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징후들이 반복되어 나타난다. 조나단은 여기저기서 사라란 이름의 여인들과 부딪히고, 사라는 조나단과 이야기했던 영화의 포스터와 마주친다. 결국 두 사람은 결혼 전 일말의 미련도 남기지 않기 위해 서로를 찾아 나선다. 조나단은 유명인의 사망기사 전문기자인 친구와, 사라는 뉴에이지 관련 용품을 파는 친구와 서로의 단서를 쫒아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을 오간다. 하지만 뉴욕공항에 내려 택시를 타고서 운명에 맡기듯 운전사에게 아무데나 데려다 달라는 식의 사람 찾기는 간발의 차이로 어긋나고,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 생각처럼 쉽지 않은 상황에 그만 포기하고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기 위해 비행기에 오른 사라. 그 순간 친구와 바뀐 지갑에서 조나단의 5달러 지폐를 발견하고 황급히 비행기에서 내린다. 한편 방황을 끝내고 결혼을 하려던 조나단은 예비신부가 선물로 준 책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서 지난날 사라가 적어준 연락처를 발견한다. 습관처럼 5달러를 보며 뒷면을 확인했던 사라와 서점만 가면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펼쳐보던 조나단은 드디어 센트럴파크의 스케이트장에서 운명처럼 조우하게 된다.

 


▲ 몇 년이 흐른 뒤 사라에게 돌아온 낡을 대로 낡은 5달러 지폐.

 


▲ 조나단은 예비신부가 선물로 준 책에서 사라의 연락처를 발견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책은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작품이다. 1985년 스페인어로 발표된 그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1988년 미국에서 영어로 번역되어 나왔다. 젊은 시절 사랑에 빠졌던 여인을 잊지 못하고 50여 년을 기다린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은 운명적 사랑을 믿는 사라의 무의식을 잘 표현해준다. 영화가 제작된 해가 2001년이고, 조나단의 예비신부가 이 책을 선물로 건네며 초판본이라고 이야기한 걸 보면 발간된 지 10년이 넘은 책이다. 미국의 경우 초판본과 저자 사인본을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가 있다. 의미 있는 책이 처음 나온 그 순간과 그 책이 저자와 만났다는 점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낡은 책이라고 외면받는 게 아니라 세월이 흘렀기에 그 가치를 더욱 인정받는 것이다. 그래서 뉴욕에는 초판본과 사인본만을 파는 ‘레프트 뱅스 북스(http://leftbankbooksny.com)’ 같은 전문서점도 있다. 아마도 영화 속 예비신부도 이곳에서 ‘그 책’을 샀을 것이다. 북디자이너들 또한 자신이 디자인한 책이 나오면 저자의 사인을 받아 간직하고 싶어 한다. 비록 책의 내용은 저자의 몫이지만 디자인을 하며 그 내용과 교감했던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것이다.

사라의 지갑에서 가판대로, 그리고 다시 친구의 지갑을 통해 돌아온 5달러 지폐. 사실, 달러 발행량 전체의 6%를 차지하고 평균수명이 16개월인 5달러 지폐가 영화에서처럼 몇 년이  흐른 뒤 사라에게 되돌아올 확률은 거의 없다. 그야말로 우연한 행운, 운명이다. 얇디얇은 이 지폐에는 두꺼운 소설책만큼이나 긴 이야기가 담겨 있다. 1861년 최초 발행된 5달러에는 링컨이 아니라 알렉산더 해밀턴의 초상이 그려져 있었다. 그 후 몇 번의 개정을 통해 1914년에 이르러서야 링컨의 초상화가 담긴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두 지폐는 발행된 시기의 간극만큼이나 디자인과 위조 방지 장치에 많은 차이가 있다.

 


▲ (위) 링컨이 처음 등장한 1914년의 5달러 지폐.
(아래) 2008년 리디자인 되기전의 5달러 지폐.

 


▲ 2008년 리디자인된 5달러 지폐.
1: 미세인쇄 부분.
2: 노란색으로 인쇄된 여러개의 숫자 5.
3: 은화. 왼쪽은 5가 3개, 오른쪽은 커다란 5가 1개(위조 방지를 위해 스캔, 프린터 시에는 보이지 않는다. 실제 지폐에서는 확인 가능).
4: 블랙라이트로 볼때만 보이는 숨은 글씨.
5: 독수리의 방패 부분-미세인쇄.
6: 독수리에는 많은 상징이 포함되어 있다.

 

국제간 금융거래에 통용되는 기축통화인 달러는 그 중요성과 가치 때문에 항상 위조의 대상이 되어왔다. 위조가 어렵도록 발행 당시의 최고 기술과 보안장치를 디자인에 반영하지만 위조하는 쪽도 만만치 않은 기술로 쫒아오고 있다. 2008년 미국은 최첨단 보안기술을 반영한 새 디자인의 5달러 지폐를 내놓았다. 지폐는 사용되는 용지부터 특별하다. 워터마크 또는 은화를 전용지 생산 때부터 삽입하는데 이 종이는 당연히 시중에서 구할 수 없다. 흔히 보는 인쇄물들은 평판인쇄(옵셋)를 하지만 지폐는 요판인쇄를 한다. 지폐를 만질 때 느껴지는 도드라진 촉감이 그 결과다. 그리고 일반 프린터나 인쇄기로는 구현할 수 없는 미세인쇄를 추가한다. 이 부분은 돋보기로 보아야만 판별할 수 있을 정도로 세밀하며, 일반 스캐너나 복사기에서는 뭉개진다. 그런가 하면 위폐감별용 블랙라이트로 지폐 표면을 비출 때만 드러나는 숨은 장치도 있다. 세부사항을 아래 그림에서 살펴보자.

 


▲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 화살 쪽을 향해 있는 독수리의 머리.

 

지폐는 발행국의 역사와 성격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미국은 청교도들이 새운 나라답게 지폐에도 신이 언급되어 있다. 뒷면에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In God We Trust)’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앞면에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 미국의 국가문장에 포함되는 독수리가 삽입되어 있다. 이 독수리는 오른쪽 발로는 평화의 상징인 올리브가지를, 왼쪽 발로는 13개의 화살을 쥐고 있다. 이 화살들은 독수리 머리 위의 13개 별과 함께 영국과 독립전쟁을 벌였던 식민지의 갯수를 의미한다. 독수리는 보통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 가지 쪽을 바라보고 있지만 전쟁 중에는 화살을 든 쪽을 바라본다고 한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랄까.

독수리가 물고 있는 리본에 적힌 라틴어 ‘E PLURIBUS UNUM’은 ‘여럿이 모여 하나가 되자’는 뜻이다. 통일과 협동을 강조한 말로 1956년까지 미국의 비공식 표어였다. 이것이 ‘In God We Trust’로 바뀐 것이다. 이런 부분들을 보면 지폐가 경제적 역할을 넘어 미국의 정체성과 정책을 홍보하는 한 장짜리 선전물 같은 느낌이다. 우리 주변에는 이렇게 숨겨진 많은 의도와 상징이 존재한다.

 

출처: 타이포그래피 서울 – TypographySeoul, http://www.typographyseoul.com

Design in Cinema – 7. <키핑 더 페이스>(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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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횡단보도에서 망설이다

 

뉴욕의 밤거리를 술에 취해 배회하는 카톨릭 신부 브라이언(에드워드 노튼). 그가 아이리쉬 펍의 바텐더에게 고해성사를 하듯이 털어 놓은 사연은 바로 기구한 사랑 이야기다.

 


▲(상)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괴로워 하는 브라이언 신부.
▲(좌) 어린 시절 3총사. 맨 오른쪽이 브라이언.
▲(우) 두 친구는 랍비와 신부가 되어 뉴욕에서 봉사하고 있다.

 

어린 시절 3총사라 불리며 절친하게 지냈던 세 아이. 남자 둘, 여자 하나. 당시 유명했던 테이텀 오닐(동시대 스타였던 브룩 쉴즈와 달리 주근깨 투성이의 친근한 미모를 가졌다)을 닮은 여자아이는 아버지의 전근 때문에 서부로 이사를 가게 된다. 남은 남자 아이들은 계속 우정을 이어가고, 한 친구는 신부, 또 다른 친구는 유대교 랍비가 되었다. 브라이언 신부와 유대교 랍비 제이크(밴 애플릭)가 그들이다. 서로의 우정만큼이나 서로의 종교를 존중하는 두 친구에게 과거의 여자 친구 애나 라일리(지나 앨프만)가 나타난다.

 


▲ 10년 만에 만난 애나는 멋진 커리어우먼이다.

 

월 스트리트 금융계의 파워 넘치는 커리어 우먼에다가 멋지기까지 한 애나. 그녀의 등장은 두 친구의 마음을 마구 흔들어 놓는다. 과거처럼 셋이서 틈만 나면 어울리지만, 더 이상 어린 애들이 아니기에 마음이 마냥 편하지는 않다. 브라이언은 신부직을 포기할 만큼 애나를 사랑하게 되고, 제이크는 비유대인 아내를 반대하는 홀어머니와 유대교당 장로들 때문에 고민한다. 그러다가 애나와 제이크는 다른 사람들 몰래 사랑을 시작한다. 애나는 제이크와의 사랑을 위해 캘리포니아의 직장까지 포기하고 뉴욕에 남겠다고 한다. 그러나 즐거운 시간도 잠시, 제이크는 애나에게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며 상처를 준다. 상심한 애나는 브라이언에게 울며 하소연을 한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브라이언은 애나가 자신을 사랑해서 고민하는 줄만 알고, 애나에게 속에 간직했던 사랑을 고백했다가 거절당하고 만다.

 


▲ 애나의 마음을 오해한 브라이언은 사랑을 고백하지만, 애나는 당황스럽기만 하다.

 

이미 애나가 제이크와 사귀고 있음을 알게 된 브라이언은 깊은 상처를 받고 방황을 한다. 애나에게 거절당한 만큼이나 제이크가 자신에게 사실을 숨긴 것이 큰 상처였던 것이다. 얼마 후 제이크에게 실망한 애나는 다시 서부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애나와 헤어진 제이크는 브라이언을 찾아와 두 사람의 관계를 숨긴 것에 대해 사과한다. 브라이언은 오히려 망설이는 제이크에게 애나를 붙잡으라고 격려한다.

 


▲ 뉴욕에서는 제이워크(jaywalk)라고 해서, 종종 정지신호에서도 무단횡단을 한다.

 

영화 속에서 두 친구가 이런 대화를 나누는 장소는 성당 근처의 횡단보도다. 둘의 주변으로 어느새 사람들이 몰려든다. 브라이언이 행인들에게 “왜 여기 서 있죠?”라고 묻는다. 행인들은 “신호가 바뀌지 않아서”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브라이언이 외친다. “여긴 뉴욕이에요. 누가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립니까? 빨리 건너가세요!” (대부분의 뉴욕 도로는 일방통행이기 때문에 한쪽 방향만 주의하면 된다. 그래서 보행자들은 보행 신호가 아니어도 다가오는 차가 멀리 있으면 건너가는 관습이 생겼다.) 옆에 있던 제이크는 이 말을 통해 우유부단했던 자신을 깨닫고 애나의 송별 파티장으로 달려가는데….

여기에서 문제의 횡단보도 신호등을 보자. 헬베티카로 붉고 선명하게 “DONT WALK” 라고 표시되어 있다. 보행자 신호는 아랫부분에 “WALK”라고 백색으로 표시된다. 이 얼마나 오만한 신호등인가. 영어를 모르면 횡단보도도 건너지 말라는 듯한 차별적인 신호등 아닌가. 이는 빨강, 파랑의 사람 모양 픽토그램이 들어간 신호등에 익숙한 우리에겐 너무 낯선 기호다. 물론 눈치껏 다른 사람들을 따라 건널 수는 있겠지만, 신호등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때로는 목숨을 잃을 만큼 위험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그만큼 오랜 시간 많은 개선과 발전을 거쳐왔다.

 


▲ 1952년에 처음 설치된 문자기반 보행자 신호등.

 

세계 최초의 신호등은 사람이 아니라 운송수단을 위한 신호등이었다. 증기자동차가 거리를 누비던 1868년 영국 런던에서 사용된 가스식 수동 신호등이 최초라고 알려져 있다. 가스의 폭발로 위험성이 재기되자 촛불, 석유등으로 변화했다.
최초의 전기 신호등은 1914년 미국 디트로이트에 설치되었다. 다만 당시엔 정지를 표시하는 적색등만 있었다. 1918년에 이르러서야 오늘날과 같은 3색 신호등이 등장해 뉴욕에 설치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교차로 가운데 설치된 교통탑 위에서 사람이 수동으로 조작하는 방식이었다.

<키핑 더 페이스>에 등장하는 횡단보도 신호등은 1952년 2월에 뉴욕에 도입된 것이다. 영화 제작년도가 2000년이니 5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셈이다. 그래서 옐로 택시와 함께 뉴욕을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하지만 ‘세계의 수도’, ‘다민족의 용광로’라 불리우는 국제도시 뉴욕이 이 불친절한 문자기반 신호등을 50년간 고집해왔다는 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미 오래전 각국에서 픽토그램 기반의 적청 신호등이 사용되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문자기반 신호등은 2004년 2월에서야 픽토그램 기반 LED 신호등으로 교체되었다. 당시 뉴욕시장 블룸버그는 “뉴욕은 전 세계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으로, 비영어권 사람들도 많다. 오늘에야 그들에게 친절하고 안전한 보행자 신호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고 발표했다. 이 말은 역설적으로 그 동안의 뉴욕의 보행자 신호가 차별적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 2004년 교체된 픽토그램 기반 보행자 신호등(뉴욕). / 픽토그램의 외형 차이가 크지 않다.(서울)

 

뉴욕의 신호등은 서울의 신호등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기존의 ‘적청 신호등 + 픽토그램’에 비해 몇 가지 면에서 진화한 신호등이다. 적청 신호등은 색맹인 사람들에게는 효과가 없다. 그리고 픽토그램도 정지한 사람, 걷는 사람으로 구별되는데, 그 변별성이 미미하다. 시력이 낮은 사람에게는 비슷해 보일 것이다.
뉴욕의 신호등은 정지신호와 보행신호의 픽토그램 사이에 유사성이 없다. 정지신호는 적색 손바닥이다. 접근금지, 거부, 정지를 뜻하는 손바닥은 보편적 시각 언어다. 그리고 보행신호는 백색의 걷는 사람 모양이다. 정지자세로 잘못 인식되지 않도록 몸 동작도 역동적이다. 이 두 신호의 색상은 각각 적색•백색이므로 색맹 여부에도 상관이 없다. 매우 유니버셜한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이 신호등은 2010년 8월에 다시 한 번 진화한다. 사실 횡단보도에 서면 건널 것인가 말 것인가 망설여지는 순간이 있다. 신호가 교체되는 잔여 시간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위한 신호등에는 이런 기능을 황색 표시가 하고 있다. 이런 기능이 없는 보행자 신호 때문에 교통사고가 빈번해지자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었다. 보행신호에서 정지신호로 바뀌기까지의 잔여시간을 숫자로 표시해주는 기능이다. 이 기능이 탑재된 신호등으로 교체된 이후 실제 사고율이 대폭 낮아졌다고 한다.

 


▲ 2010년에 교체된 잔여시간을 알려주는 신호등.

 

하지만 새 신호등에도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다. 애써 신호등에서 빠졌던 문자가 다시 들어간 것이다.
과연 신호등의 잔여시간 표시에는 문자적 표시 외에는 방법이 없는 걸까?

 


▲ 서울에서 채택된 잔여시간 표시의 두 가지 방식.

 

서울의 신호등은 잔여시간 표시를 두 가지 방식으로 채택하고 있다. 화살표 표시가 줄어드는 비문자적 표시와 숫자로 알려주는 문자적 표시다. 화살표 표시의 장점은 문맹자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단점은 잔여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아라비아 숫자가 언어와 상관없이 만국 공통어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면, 현재로서는 숫자 표시가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세계의 신호등은 진화하고 있다. 모래시계 모양으로 잔여시간을 표현하는 곳도 있다. 이런 시도는 LED 조명의 개발로 인해 가능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친근한 신호등 속 사람 모양 픽토그램은 언제 사용되기시작했을까? 독일의 신호등에 표시된 배 나온 남자 픽토그램은 암펠만(Ampelmännchen-독일어, 신호등 남자)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 녹색은 게어(Geher, 걷는 사람), 적색은 슈테어(Steher, 서 있는 사람)다. 이 암펠만은 귀여운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50이 넘은 아저씨다. 1961년 동독의 칼 페글라우 박사는 동베를린 시로부터 의뢰받아 남녀노소에게 친근하고 교육적 효과가 있는 픽토그램을 만들었다. 시력이 저하된 노인이나 지각능력이 낮은 어린이들을 위해 발광부분의 면적을 최대화한 결과 통통한 모습이 되었다는 것이다. 날씬한 모습의 픽토그램이 대세인 요즘에 역으로 구별되는 귀여운 몸매다.

 


▲ 구동독의 신호등이 부활된 독일의 암펠만 보행자 신호등.

 

이 신호등은 아쉽게도 동독이 서독에 흡수 통일됨에 따라 거리에서 사라지고 만다. 구동독인의 향수와 함께 사라졌던 암펠만은 1995년에 조명 디자이너 마르쿠스 헥하우젠에 의해 조명으로 재탄생 된다. 이후 다양한 제품으로 탄생되어 통일 이후 상대적 상실감을 느껴온 구동독 사람들에게 향수를 자극하는 마스코트로 사랑받았을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급기야 2005년에는 횡단보도의 신호등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물론 LED 등 신기술로 새단장을 하고서 말이다. 신호등의 디자인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더욱 더 진화해서 보행자들이 횡단보도에서 한치의 망설임과 혼란 없이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해줄 새로운 신호등을 기대해 본다.

 

출처: 타이포그래피 서울 – TypographySeoul, http://www.typographyseoul.com